해산물의 감칠맛을 품은 국물 라면의 등장, 새우탕은 언제 시작됐을까?
새우탕 라면은 우리에게 익숙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라면이다. 진한 국물 라면의 계보 속에서 이 제품이 차지하는 의미는 단순히 하나의 컵라면을 넘어서 한국인의 입맛 속에서 ‘해산물 베이스’라는 고유의 미각 코드를 자리잡게 만든 존재라 할 수 있다. 새우탕의 첫 등장은 농심이 출시한 ‘새우탕큰사발’이다. 정확한 출시 연도는 1990년대로 알려져 있는데, 라면 업계가 ‘비빔라면’이나 ‘간장라면’ 등의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던 시기였다. 당시의 라면 시장은 고기 베이스 국물이 주류였고, 짬뽕 라면조차도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 속에서 해산물 풍미를 강조한 ‘새우탕큰사발’은 컵라면의 간편함과 한국식 탕 요리의 깊은 맛을 조합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제품이었다.
특히 이 라면의 강점은 ‘진한 새우 맛’이라는 확실한 정체성에 있다. 조개나 오징어가 아닌, ‘새우’를 중심 재료로 삼았다는 점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고소하면서도 바다 향이 살아 있는 새우는 한국 음식에서 국물 감칠맛을 낼 때 자주 사용되는 재료다. 특히 된장국이나 찌개, 칼국수 등에 자주 활용되는 만큼 익숙하면서도 집밥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장점이었다. 농심은 여기에 고추기름을 더해 얼큰함을 살렸고, 건새우를 그대로 건더기 스프에 넣어 국물의 진정성을 부여했다. 간편함을 중시하던 컵라면 시장에서 이렇게 복잡한 맛을 구현한 것은 소비자들에게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결과적으로 ‘새우탕큰사발’은 장수 제품 반열에 오르게 된다.
국내 첫 출시는 컵라면으로 이뤄졌지만,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봉지라면으로의 확장은 없었다. 이는 다소 의아한 일이다. 라면 시장에서 컵라면이 인스턴트의 대표라면, 봉지라면은 집밥 대용의 의미가 더 강하다. ‘새우탕’이 봉지 형태로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로는 제조 공정의 특수성이나, 국물 베이스의 조화 문제, 혹은 당시 시장의 수요 예측 등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공백은 2024년에 이르러서야 메워진다. 2024년 농심은 새우탕의 브랜드 가치를 확장하며 봉지라면으로도 출시하였고, 이는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컵라면에서 봉지라면으로, 새우탕의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2024년은 한국 라면 시장에 있어 ‘재구성’의 해였다. 기존에 컵라면으로만 존재하던 브랜드들이 잇따라 봉지라면 형태로 확장되며 다시금 조명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그 중심에는 농심의 ‘새우탕’도 있었다. 농심은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새우탕큰사발’을 봉지라면 버전으로 새롭게 출시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것은 단순한 포장 방식의 변경이 아니라, 제품 포지셔닝과 소비자 경험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는 ‘제품 리디자인’의 성격을 가진다.
봉지라면으로 확장된 새우탕면은 기존 컵라면에서 느낄 수 없었던 깊은 풍미를 강조한다.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스프의 구성 변화다. 기존 분말 스프 기반의 컵라면에서 벗어나 액상스프를 사용하며 해산물 육수의 풍미를 더욱 진하게 구현했다. 여기에 고추기름과 새우 향이 결합되어, 한층 매콤하면서도 바다 내음이 감도는 국물을 만들어낸다. 둘째는 면발의 질감이다. 컵라면에서는 조리 시간이나 용기 구조상 다소 부드럽고 얇은 면이 주를 이뤘지만, 봉지라면에서는 보다 굵고 쫄깃한 면발이 사용되며 씹는 맛이 살아났다. 이는 전반적인 식사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새우탕 봉지라면의 출시는 단순히 제품군 확장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최근 MZ세대의 ‘혼밥 문화’와 ‘집밥 지향’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다. 봉지라면은 조리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국물 맛을 더 풍부하게 구현할 수 있고, 야채나 계란, 해산물 등을 추가해 하나의 요리로 완성시킬 수 있는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주방에서 직접 요리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와 잘 맞아떨어진다.
결과적으로 ‘새우탕 봉지라면’은 컵라면 버전과는 확실히 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브랜드의 다층적인 소비자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제품은 단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소비 경험을 제공하며 라면 시장에서의 ‘리바이벌 성공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왜 지금 다시 새우탕인가? 해산물 국물라면의 재부상
해산물 국물라면의 인기는 단발성이 아니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불닭’이나 ‘짜장’ 계열의 매운맛 혹은 비비는 형태가 유행을 이끌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국물의 깊이와 건강한 풍미를 강조한 제품들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이 흐름은 ‘바다에서 오는 감칠맛’에 집중한 라면들이 하나둘씩 주목을 받으면서 점차 강화되었다. 새우, 오징어, 홍합 등 해산물 기반의 국물은 고기보다도 깔끔하고 개운한 뒷맛을 주며, 국물맛의 섬세함에 민감한 소비자들에게 높은 만족도를 선사한다.
여기서 새우탕은 매우 상징적인 제품이다. 새우탕은 짬뽕처럼 불향이나 진한 기름맛에 의존하지 않고도 시원한 맛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깔끔한 국물을 선호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얼큰함을 바라는 중간층 소비자들에게 가장 알맞은 선택이 되고 있다. 여기에 웰빙 트렌드도 한몫한다. 최근 소비자들은 라면을 단순히 인스턴트 식품으로 보지 않고, 식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식재료의 퀄리티나 맛의 자연스러움이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고, 이는 곧 해산물 라면류의 부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우탕의 재조명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특히 봉지라면이라는 조리형 제품으로 새롭게 리뉴얼되면서, ‘집에서 해물탕 끓인 듯한 라면’을 원하는 소비자층과 확실한 접점을 만들어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새우탕을 활용한 요리법’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제품은 단순한 라면 그 이상으로 소비되고 있다. 실제로 새우를 추가하거나 조갯살, 두부, 청양고추를 넣은 레시피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는 새우탕이 하나의 ‘요리 키트’처럼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시장에서 새우탕이 가지는 의미, 장수 브랜드의 재해석
농심 새우탕은 30년 가까이 유지돼 온 스테디셀러다. 국물 라면의 범주에서 고정적인 포지션을 차지해왔으며, 컵라면 형태로 꾸준한 매출을 유지해온 안정적인 제품이다. 하지만 이처럼 오래된 브랜드는 트렌드 변화 속에서 점차 소비자에게 낡고 진부한 이미지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그런 점에서 2024년 출시된 봉지라면 버전의 새우탕은 ‘브랜드 리뉴얼’의 전형적인 성공 사례다.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농심은 새우탕 봉지라면을 출시하며 SNS 마케팅과 함께 유튜버 협찬, 레시피 영상 등을 적극 활용했다. 특히 ‘추억의 맛을 현대적으로 즐긴다’는 감성에 초점을 맞추어 MZ세대에게 어필했으며, 동시에 중장년층에게는 과거의 맛을 되살리는 제품으로 인식되게 했다. 라면 시장 내 점유율 자체는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브랜드 이미지 구축과 소비자 충성도 측면에서 새우탕의 성과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또한 해외 교포 시장에서도 새우탕은 꾸준히 수출되는 제품이다. 간편하게 한식의 해물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해외 마트에서도 인기가 높으며, 특히 동남아, 미주, 유럽 지역의 K-푸드 전문점에서 판매가 활발하다. 농심은 이를 통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새우탕 브랜드의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새우탕의 확장성’이다. 컵라면과 봉지라면을 넘어, 간편식 형태의 국물 제품이나 냉동식품, 심지어는 건더기 스프만 따로 출시하는 식의 다양화가 충분히 가능하다. 새우탕이 단순한 라면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서 독립적인 가치를 갖는다면, ‘농심의 제2의 신라면’은 새우탕이 될 수도 있다.
참고자료
농심 공식 홈페이지 제품소개
식품산업통계정보(FIS) 2024년 라면 제품군별 점유율 보고서
매일경제, “농심, 새우탕 봉지라면 출시…해물국물 강화 전략” (2024.10)
식품저널, “컵라면의 봉지화, 2024 라면 트렌드 리포트”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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